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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 '안심하란 의미로 22살 청년 박종철을 벤치에 앉혀 놓았다' (2025.06.24.)

관리자 2025-08-06 조회수 105

원문 기사 >> https://omn.kr/2e9d8


오마이뉴스

"안심하란 의미로 22살 청년 박종철을 벤치에 앉혀 놓았다"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 기념 시민강좌 '남영야학' 시작... 박종철의 삶과 꿈을 기억하다

25.06.24 10:20 | 최종 업데이트 25.06.25 17:28 | 김재우(compagna15)

"87년 1월 12일에 부산에서 박종철 선배가 올라와서 13일에 학교를 갔더니 성적표 종이가 쌓여있었어요. 성적이 좋지 않으니 우리는 안 찾아갔거든요(웃음). 그런데 이 착한 사람이 '애들이 이거 찾으러 오기 귀찮을 텐데 내가 가져다줘야지'하고 학교에서 자기 하숙집 가는 길에 사는 친구와 후배의 성적표를 다 들고 나와서 배달해줬어요."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시민강좌 '남영야학'에서 이현주 박종철센터 센터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만나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시민강좌 '남영야학'에서 이현주 박종철센터 센터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만나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이관석
87년 1월 13일 자정 즈음, 이현주 박종철센터 센터장은 하숙집을 찾아온 언어학과 선배 박종철을 만났다. 이날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이 센터장의 동생이 올라와 있었는데 '우리 동생이 왔는데 맛있는 거 사줘야 한다'며 영하 13도의 추운 날씨에 지금의 박종철 거리 입구 인근 2층 카페로 이들을 데려갔다.

"그날 카페에서 정말 깔깔깔 웃으며 즐거웠어요." 그렇게 즐거웠던 그날, 이 센터장은 그날 선배 박종철과 약속을 했다. '서로 잘못하는 게 있어서 우리 꼭 무조건 힘이 되어주고 용서해주는 사이가 되자'고. 당시 학생운동을 계속 해도 되는지 고민하던 이 센터장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선배 박종철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고민이 많았던 그 시기, 하숙집에 성적표를 전해주러 찾아온 선배 박종철을 보면서 이 센터장은 생각했다. '평생 이 선배를 믿으면서 함께 운동해야겠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을 향하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하숙집으로 바래다주려는 선배의 모습이 그렇게나 외로워보였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선배 박종철을 바래다주겠다고 나섰다가 괜히 '흰소리 하지마라'라고 한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박종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골목이 정말 선명했어요. 그 골목 딱 절반만 가로등이 있어 불빛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머지 절반은 아주 깜깜했어요. 정말 깜깜했어요. 그때가 1월 14일 새벽 2시에서 3시 정도였어요."

그리고 9시간 후인 1월 14일 오전 11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박종철 군은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 509호에서 물고문 끝에 사망했다.

암울했던 시대, 민주주의를 향한 청년 박종철의 이야기

지난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을 기념하는 시민강좌 '남영야학(夜學): 다시 민주주의'의 첫 번째 강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만나다'가 열렸다. 언어학과 후배인 박종철센터 이현주 센터장이 연사로 나서,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죽음 이전, 민주화운동가 박종철의 삶과 정신을 시민들과 나누었다.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시민강좌 '남영야학'에서 이현주 박종철센터 센터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만나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시민강좌 '남영야학'에서 이현주 박종철센터 센터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만나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이관석
이현주 센터장은 1984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입학한 박종철 열사의 학창 시절 이야기로 말 문을 열었다. 박종철은 학교 선배이자 학생 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교육시키는 지하 서클인 '대학문화연구회'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박종철 열사가 어떻게 시대와 마주하면서 민주주의를 향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가"라는 과정을 담담하게 전했다. 특히, 박종철은 대학에 와서 학생 운동을 시작했지만 교내 시위와 학교 밖 가두 시위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인 운동가였다고 회상했다.

거리 시위에 나섰다가 잡혀 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 집행유예로 나온 뒤 가족들과 계곡으로 놀러 갔던 사진, 집에서 잠옷으로 갈아 입은 사진 등 대공분실의 영정 사진이 아닌 평범했던 청년 박종철의 모습도 화면에 드러났다. 이 센터장은 "학생 운동을 한다는 것은 나의 주장을 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나의 삶과 미래를 희생하겠다는 의미였다"며 당시 학생 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의 무게감을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가장 가슴 아팠던 사람이 이한열 열사가 아니었을까"라며 시대 정신이었던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올바른 길로 나아가려 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남영동 대공분실, 인권 유린의 현장에서 피어난 저항

강연에서 이 센터장은 박종철 열사가 희생된 남영동 대공분실의 실체와 그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그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독재 권력의 정권 유지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무서운 공간"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다시는 저항하지 못하도록 모든 의지를 꺾기 위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대에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509호를 제외한 나머지 5층의 시설들이 훼손되었고, 2001년 1월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훼손된 시설을 보고 경찰들에게 크게 화를 내고 호통을 쳤던 일화는 당시 독재 정권의 만행 이후에도 계속된 가족들의 고통을 보여준다.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시민강좌 '남영야학'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만나다' 강연에 참가한 한 참가자가 발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시민강좌 '남영야학'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만나다' 강연에 참가한 한 참가자가 발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이관석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박종철 열사의 사망 시간 조작 시도였다. 경찰이 사망 시간을 11시 30분으로 하고 용산 중앙대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것으로 하자고 지시했다는 내용과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1월 16일에 가족들이 부검과 시신 인계를 요구했음에도 경찰이 시신을 강제로 화장했던 일, 강제 화장 후에도 경찰은 시신 인계를 거부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은 남영야학 참여자들에게도 공분을 샀다.

그 청년의 죽음, 꺼지지 않는 민주주의의 불씨로

이현주 센터장은 박종철 열사가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가져온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이 학생의 죽음에 모든 사람들이 분노했고, 사실은 대부분이 알고 있으면서도 나의 안위를 위해서 외면하려고 했던 국가 권력의 무도함, 부정한 권력이라는 권력을 용인하면서 외면했던 것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7년 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그렇게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역사 중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고갱이가 되었다.

당시 언론에 대한 보도지침으로 박종철 사망 기사는 2단으로만 실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가 1면부터 4면까지 박종철 관련 내용을 도배하며 보도 지침에 정면으로 맞섰던 점에 대해서 이 센터장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갖지 못했던 언론 자유에 한 발 나아간 지점'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사람들은 경찰에게 고문당했다고 하면 거짓말쟁이라고 치부했는데, 박종철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고문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게 되었죠."

실제 이 공포 속에서도 분노한 많은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서 추모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1월 20일 서울대학교에서 추모제가 열린 것을 시작으로 전국 대학에서 끊임없이 박종철 추모제가 이어졌고, 시민단체들도 분향소를 마련했으며 종교 단체들도 추모 미사나 종교회를 진행했다. 국민추도준비위원회는 2월 7일 국민 추도회와 3월 3일 49제 및 국민평화대행진이라는 두 개의 큰 추모제를 준비하며 민주화를 향한 염원을 하나로 모아냈다.

6월 항쟁, 기억과 저항으로 지켜낸 민주주의

이현주 센터장은 6.10 민주항쟁이 "우리의 민주주의의 결정적인 순간을 가져오긴 했으나 여전히 계속 그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권력의 시도는 끊임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어느 순간에도 저항을 멈추면 우리가 가진 것들을 빼앗길 수 있다"며, "끊임없는 저항 속에서 우리 주의가 정착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6월 민주항쟁은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사건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지키는 것"이며 "올바르게 기억하고 그 기억들이 내 삶이 어떤지 주변 태도에 반영시키려는 우리의 성찰이 동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시민강좌 '남영야학'에서 이현주 박종철센터 센터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만나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린 시민강좌 '남영야학'에서 이현주 박종철센터 센터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을 만나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이관석
이 센터장은 지난 6월 10일 개관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보도 지침에 의거해서 만들어졌던, 검열되어서 남겨졌던 기록들에 의거한 기억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들은 기록해서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를 제대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뒤 "기억과 기록의 공간이 되는 것이 민주화운동기념관의 미션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기억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기억으로 연결되고 확산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문이었다.

박종철의 꿈을 잇는 공간, 박종철센터와 박종철 거리

이날 강연에서는 박종철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도록 돕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들이 소개되었다. 이현주 센터장은 박종철 정신을 계승하는 게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박종철센터, 박종철거리를 만드는데 노력해왔다. 지난 2020년 6월 10일, 서울대 동문들의 모금과 관악구의 예산, 그리고 서울대 미술대학이 제작한 박종철 벤치가 박종철센터 한 켠에 설치되었다. 이 센터장은 "시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서 안심하라는 의미로 22살의 청년 박종철을 벤치에 앉혀놓았다"고 설명했다.

"'박종철' 하면 슬픔보다는 따뜻한 가슴 따뜻한 기억으로 살았던 것 같다"고 회상한 이 센터장은 박종철 거리를 만들고 박종철센터를 운영하면서 기억 전달자로서 나머지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박종철센터에 설치된 현판에는 '꿈꿨던 세상'이라는 문구가 가장 크게 씌여있다고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4층 박종철기념관을 찾았던 방문객이 남긴 글 중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한 문구가 '꿈꿨던 세상'이었던 것이다. 청년 박종철이 꿈꿨던 민주주의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계속 이어져온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됐던 많은 분들의 꿈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들의 꿈을 지금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내딛고 함께 방향을 맞춰 나아가는 것이겠죠."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 시민강좌 '남영야학'이 열린 교육동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의 모습이 보인다.
6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관 시민강좌 '남영야학'이 열린 교육동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의 모습이 보인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이관석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 기념 6월 시민강좌 남영야학(夜學): 다시 민주주의

○ 2회차: 2025. 6. 26.(목)|87년 헌법과 민주주의|한상희 명예교수(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6·10민주항쟁 38주년을 기념하며 6월항쟁의 결과로 탄생한 87년 헌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7월 시민강좌 남영야학(夜學): 검은 벽돌의 비밀
○ 3회차: 2025. 7. 3.(목)|박정희 시대의 도시와 건축 그리고 남영동 대공분실|안창모 교수(경기대학교 건축학과)
7월 남영야학 첫 시간에는 건축역사학자 안창모 교수와 함께 박정희 시대의 도시와 건축, 그리고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해 알아봅니다. 나아가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남영동 대공분실의 의의도 생각해보는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 4회차: 2025. 7. 10.(목)|지우려는 vs 지키려는 : 201812_검은_미궁_인덱스|서영걸 사진작가
사업회는 기념관 건립 공사 이전의 대공분실을 기록하고자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기록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그 흔적을 담았던 서영걸 사진작가와 함께 당시에 촬영했던 사진을 중심으로 '지우려 했던' 흔적에 대해 알아봅니다.

○ 5회차: 2025. 7. 24.(목)|남영동 대공분실, 고통의 기억을 공감하는 '공간'|김명식 교수(신한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
건축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할까요? 남영야학 다섯번째 시간에는 '악(惡)'이 어떤 방식으로 공간화되었는지 살펴봅니다. 아울러 누군가 겪었고,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고통을 기억하는 공간으로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의 저자 김명식 교수와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 교육신청
○ 신청기간: 2025. 6. 21.(토) 13:00~2025. 6. 29.(일) 20:00 / 선착순 마감
○ 신청방법: https://www.kdemo.or.kr/edev/edu/eduListPage.do 접속 후 신청
○ 선정발표: 2025. 6. 30.(월) ※개별안내
○ 문의: 민주화운동기념관 교육운영팀(02-6440-8973, edu@kdemo.or.kr)

덧붙이는 글 | 김재우 기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